예배와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만찬을 나누셨으며, 그 정점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율법적 명령이나 우리의 기분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을 기준으로 삼고 성령으로 부어지는 사랑입니다.
발을 씻기심과 성만찬이 가리키는 사랑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두 가지 큰 일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고, 떡을 떼며 이것은 내 살이요 이것은 내 피라고 성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낮추고 발을 씻어 주는 삶은 떡을 떼고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신 십자가의 사건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모든 행동이 가리키는 곳은 사랑이며,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서 가장 결정적인 말씀으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율법사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묻자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 5절이고, 둘째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입니다.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며, 구약의 핵심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예배도, 봉사도, 기도도 결국 이 두 가지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을 빼고 사랑을 말할 수 없고, 사랑을 빼고 하나님을 말할 수 없습니다.
새 계명의 사랑은 구약의 사랑과 다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구약의 사랑과 세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 사랑의 대상입니다. 구약의 사랑은 동족과 선택받은 유대인에게 머물렀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민족과 나라, 인종과 연령과 성별의 벽을 넘어섭니다. 둘째, 사랑의 한계입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사랑의 방법입니다. 율법적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사랑이며, 그 극치가 조건 없이 희생하신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이 촛불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과 같습니다.
이 사랑은 성령으로 부어집니다
이 사랑은 내 노력과 의지, 훈련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집니다. 사람의 사랑은 잘해 주면 잘하고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식으로 조건이 붙기 쉽고, 자기 기분과 감정이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헌금도, 봉사도, 전도도, 사랑도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도 중요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처럼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의 표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제자 훈련을 마쳤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하나 될 때 드러납니다. 예수 제자라고 하면서 싸우고 미워하고 불평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있어도 제자의 모습은 없습니다. 사랑은 교회의 본질이며 제자의 표지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이 말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만은 기억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합시다.
- 내 기분과 감정이 아니라 주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읍시다.
- 용서에 횟수의 한계를 긋지 말고 주님처럼 용서합시다.
- 사랑을 나의 노력과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 구합시다.
-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어 제자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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