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성령과 구제
성령이 임하면 기도와 전도와 물질관이 달라지고, 소유를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 구제가 저절로 넘쳐흐르게 된다. 교회의 구제는 인간의 도덕이나 양심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성령을 받으면 말과 기도와 전도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내 말과 내 생각을 전했지만, 성령님이 대신 말씀하시기 시작하면 설교가 달라집니다. 성령이 없는 설교는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성령이 임한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도 베드로의 설교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그 설교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 예수의 부활을 전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합심하여 소리 높여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순절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물질관이 변하고 구제가 넘칩니다 (32절)
사도행전 4장 32절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인생관과 세계관뿐 아니라 물질관도 변합니다. 여기서 '하나도 없더라'는 말은 성령이 임하면 예외 없이 구제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구제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차면 넘치듯 저절로 넘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했는지는 그 사람이 선교에 관심이 있는지, 가난한 이를 돕는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가 구제를 하고 있는지가 참된 교회인지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구제는 인간의 도덕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휴머니즘이나 인간의 도덕, 윤리, 양심으로 하는 것은 교회가 말하는 구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구제는 성령이 충만하여 넘쳐 흐르는 것입니다. 자선단체의 구제는 양심과 도덕심에 호소하지만, 교회의 구제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므로 거기에 구원과 영생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혁명, 폭력,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나누어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부자의 것을 빼앗아 평등을 만들려 하는 것과 달리, 교회의 평등은 성령에 의해 자발적으로 나누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응답은 제3자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33절, 35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무리가 큰 은혜를 입었고, 그 가운데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밭과 집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구제를 강조해서 구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구제가 자연스럽게 넘칩니다. 물질 문제의 근본 해결은 영적인 문제에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은 누군가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마음과 통장과 주머니를 열게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인류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눈다면 가난은 사라질 것이며, 가난은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처럼 겸손히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36절)
36절의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난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땅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누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처럼 위로하는 자였으며, 사도 바울이 사역이 뛰어났다면 바나바는 인격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위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자기 것을 쓰지 않고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데서 그의 겸손을 읽을 수 있습니다. 헌금은 교회 공동체에 맡겨 예수 이름으로 쓰이게 하는 것이 사도행전적 방법이며, 교회는 그 헌금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바르게 쓰는 책임이 있습니다. 주는 데서 얻는 기쁨이 받는 데서 얻는 즐거움보다 더 큽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성령의 사로잡힘을 구하며 기도합시다.
- 소유를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나눕시다.
- 가난한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히 구제하는 연습을 합시다.
- 영적인 목적 외에 교인끼리 돈을 빌리거나 보증을 서는 일은 삼갑시다.
-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주는 바나바 같은 성도가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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