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자유를 섬기는 교회 (눅 4:16~30)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 복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으로 참된 자유를 얻은 교회는 그 자유를 지키고 이웃의 자유를 섬겨야 합니다.
자유는 얻기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1945년 광복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는 자유를 거저 물려받았습니다. 한자 문화권에는 본래 자유에 해당하는 명사가 없었고, 조선왕조실록의 자유는 방종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자유의 의미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은 복음이 전해지면서부터이니, 우리나라의 자유는 복음 전파의 역사와 거의 같습니다. 자유는 와이파이처럼 있는 동안에는 있는 줄도 모릅니다. 새장에 오래 갇힌 새가 문이 열려도 날지 못하듯, 자유는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습니다
1900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었다고 답했습니다. 해방감과 함께 찾아온 고독과 불안,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내면의 힘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유를 짐으로 여기고 도피했다는 것입니다. 도피의 길은 복종, 파괴, 동조 세 가지였고, 1930년대 독일 국민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탱크로 오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들어옵니다. 감사를 잃은 자유는 당연해지고, 당연해진 자유는 지켜지지 않아 곧 잃게 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혼자 서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하나님만 홀로 자유하시고, 피조물의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랑의 울타리 안의 자유입니다. C.S. 루이스의 말대로 배반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순종은 사랑이 아니라 사슬이므로,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그 자유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말미암는 자유를 추구해 관계를 끊자 남은 것은 두려움과 숨음과 책임 전가였고, 뿌리 뽑힌 인간은 우상에 기댑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고기 먹던 때를 그리워했습니다. 자유는 선포가 아니라 광야의 훈련으로 체득됩니다.
정의는 자유의 집, 사랑은 정의의 완성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1943년 「정의와 사회 질서」에서 국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가를 구원자로 믿으면 국가가 우상이 되고 국민은 우상의 종이 됩니다. 국가의 역할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게 지키는 정의이며, 자유는 국가의 선물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몫입니다. 그래서 브루너는 생각과 양심과 예배까지 요구하는 전체주의를 불의의 극치로 보았습니다. 전체주의는 위에서 강요되기보다 아래에서 국민이 초대하는 것이므로, 자유로운 나라의 참 성벽은 국가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국민입니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의이지만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유 그 자체로 오셨습니다 (16-21절)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읽으시되 58장 6절의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을 엮으셨습니다. 해방받고도 자유를 나누지 못한 실패의 역사를 이제 내가 이루겠다는 뜻입니다. 또 "보복의 날"은 읽지 않고 은혜의 해에서 멈추셨으니, 지금은 보복이 아니라 은혜의 때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의 '자유'(아피에미)는 죄 사함에 쓰인 단어와 같아서, 이 자유는 죄의 결박이 풀리는 자유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뿌리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 곧 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제도 안에서 자유로워도 여전히 종입니다. 자유를 얻은 사람은 갈라디아서 5장의 말씀대로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 섬깁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의 세 가지 모습 (26-30절)
나사렛 사람들은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에게, 엘리사가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보내졌다는 말씀에 분노해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몰았습니다. 이방인, 특히 원수 나라의 장군에게 베푸신 은혜를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광복의 기억이 미움으로 끝나면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침략의 역사는 기억하고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하되 미움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되니, 하윤조 목사님이 2007년 동경 러브소나타에서 "피해자의 오만을 회개합니다"라고 한 것이 그 예입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첫째, 하나님만 예배해 어떤 권력과 이념도 하나님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합니다. 둘째, 복종하지 않고 미움에서 힘을 얻지 않으며 다수에 무조건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키웁니다. 셋째, 이주민과 탈북민, 자유 없는 북녘 동포 같은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을 섬깁니다.
삶에 적용하기
-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며 다음 세대에 그 무게와 가치를 전합시다.
- 권력자를 우상으로 삼거나 미움에 휩쓸리거나 다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지 않도록 깨어 있읍시다.
-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자유인으로서 하나님만 예배하고 의지합시다.
-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되 미움의 포로가 되지 않고 피해자의 오만을 회개합시다.
- 이주민, 탈북민, 북녘 동포 같은 억눌린 이웃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섬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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