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고통

2010.09.17하용조로마서 9:1-5

바울은 구원받은 기쁨 속에서도 복음을 거부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보며 그치지 않는 슬픔을 안았습니다. 그 슬픔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마음에 닿아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커질수록 깊어지는 바울의 고통

로마서 1장부터 8장은 개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말씀하고, 9장부터 11장은 그 구원이 온 우주와 전 인류에게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9장을 자신의 고통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무엇도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외쳤지만, 동시에 마음속에는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은 동족 이스라엘이 복음과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데서 온 영적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통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었고, 저주가 아니라 애통이었습니다. 이 고통은 예수를 만난 뒤에 생긴 것입니다.

가족이 믿지 않는 고통은 가장 깊은 슬픔입니다

사람에게는 병, 가난, 이혼 같은 고통이 있지만, 바울의 고통은 내 민족과 내 가족이 예수를 거부하는 데서 옵니다. 남의 자식이 잘못하는 것은 견딜 수 있어도 내 자식이 그러면 견딜 수 없듯이, 내 민족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은 바울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로 헌신해도 부모와 자녀, 아내가 믿지 않는다면 그 고독은 깊어집니다. 한 자매는 연세대학교에 다니며 예수를 만나 기쁨으로 울었지만, 곧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이 지옥에 갈까 봐 울었습니다. 예수 믿는 기쁨만큼 고통이 있고, 축복만큼 슬픔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를 위해 눈물로 중보하는 마음

구약의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도 좋으니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의인 쉰 명에서 열 명까지 낮추며 간구했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 자녀를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원치 않았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이 눈물은 단지 자기 민족을 아끼는 감정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마음에 닿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택함 받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노력으로 택함을 받은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야곱 같은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그 목적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육신으로 태어날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4절과 5절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을 나열합니다. 양자 된 백성,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조상, 그리고 육신으로 그리스도가 나신 축복입니다. 특히 예배는 하나님을 날마다 만날 수 있는 특권이며,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의 자리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그는 빛 가운데 음성을 듣고 눈이 멀었다가, 아나니아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인류의 죄를 용서하러 오신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을 거부했듯이, 우리 가운데도 기도와 봉사, 전도와 헌금을 축복으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고통과 섭리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만나 받은 구원의 기쁨을 가족과 이웃을 위한 눈물의 기도로 이어갑시다.
  • 새벽기도와 예배를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는 특권으로 여기고 소중히 지킵시다.
  • 내 민족과 가족, 이웃의 구원을 위해 모세와 아브라함처럼 중보 기도합시다.
  • 받은 축복을 세상 것으로 덮지 말고 기도, 봉사, 전도, 헌금으로 나눕시다.
  • 드라마를 보고 흘리는 값싼 눈물보다 영혼을 위한 진실한 눈물을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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