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5)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다 (시 1:1~6)
나무의 생사는 크기나 명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자는 열매를 만들려 애쓰기보다 마르지 않는 시냇물이신 그리스도 안에 말씀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나무의 생사를 정합니다
사하라 사막의 테네레 나무는 400km 안에 다른 나무가 없는 외로운 아카시아였습니다. 1938년 근처에서 우물을 파다가, 뿌리가 36미터, 곧 10층 건물 높이만큼 땅속으로 파고들어 마르지 않는 물줄기에 닿아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반대로 안네 프랑크의 나무로 불리던 암스테르담의 마로니에는 강철 지지대로 떠받쳤지만, 곰팡이 병이 줄기 속 절반 넘게 갉아먹어 2010년 태풍에 1m 높이에서 부러졌습니다. 나무가 살고 죽는 것은 크기나 명성이나 버팀목이 아니라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시편 1편은 이 자연의 원리로 제자도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시냇가로 옮겨 심기셨습니다 (1-3절)
3절의 '시냇가'는 자연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일부러 끌어들인 인공 수로이고, '심은'은 누군가 골라 심고 가꾸고 옮겨 심어 지켜 주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본래 에덴의 강가에 지음받았으나 죄로 메마른 광야로 옮겨졌고, 농부이신 하나님이 다시 시냇가로 옮겨 심으셨습니다. 1절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세 단계로 가라앉는 인생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은 똑똑하고 분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의 자리에서 파내어 옮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절)
1절의 '복이 있는 사람'은 단수입니다. 악인의 꾀를 한 번도 따른 적 없고 죄인의 길에 선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없으며, 이 말씀에 합당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니 시편 1편은 착하게 살라는 도덕 교훈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고 이를 악물고 애쓰기 전에, 참으로 복 있는 분을 믿고 그분 안에 옮겨 심긴 자로서 그분이 누리시는 복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은 단수지만 복은 복수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며 되새길 때 뿌리가 내립니다 (2절)
'깊이 생각한다'는 히브리어 '하가'는 조용한 사색이 아니라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비둘기가 먹이를 쪼는 소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묵상은 중얼거리며 반복하는 것이었고, 랍비들은 이를 소의 되새김질에 비유했습니다. 책을 덮고 내용을 떠올려 보고, 생각나지 않으면 다시 펴 보는 학습이 기억력을 크게 높이듯, 말씀도 삶의 순간마다 되새길 때 영혼에 뿌리를 내립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묵상을 읽기, 되새기기, 기도하기, 행하기로 나누었고, 마르틴 루터는 읽기, 되새기기, 시련으로 요약해 시련을 묵상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앞서 '즐거워함'이 있습니다. 스펄전은 무릎 꿇고 힘들게 성경을 스무 번 읽었는데도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람에게, 바로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진도를 채우려 빨리 돌려 읽는 것도 뿌리 내리는 길이 아닙니다. 드라마는 한 대사도 놓치지 않으려 보면서 말씀은 어떻게 대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열매는 뿌리 내린 결과이고 형통은 영혼의 형통입니다 (3-4절)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열매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인내를, 시험의 때에는 믿음을 주십니다. 1년 내내 열매가 달린 나무는 가짜 나무입니다. '형통'은 환경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형통이며, 하나님은 영혼이 형통하도록 환경을 더 어렵게 하기도 하십니다. 4절은 악인을 바람에 나는 겨에 견주며 '에츠'(나무)와 '모츠'(겨)로 운율을 맞춰 대조합니다. 뿌리 없는 신앙은 코로나 팬데믹의 바람에 날아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들이 있듯 쉽게 흩날립니다. 열매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은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의 모임 안에 함께 심겼습니다 (5-6절)
1~2절의 복 있는 사람은 홀로인 듯 보였지만, 5절에는 의인의 모임이 나옵니다. 농부 되신 하나님은 한 그루만 옮겨 심으신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동산, 곧 숲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이 모임에 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들이고, 우리는 열매를 스스로 만들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시내이신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라고 부름받았습니다. 뿌리가 자라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보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홀로 말씀을 대하는 시간에 뿌리가 그리스도께로 뻗어 가는지가 생명력을 결정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열매를 스스로 만들려 애쓰기보다 마르지 않는 시내이신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는 일에 힘씁시다.
- 말씀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리 내어 읽고 되새기며 삶의 순간마다 떠올립시다.
- 진도를 채우는 의무감이 아니라 말씀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합시다.
-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시련 속에서도 그 말씀대로 살아내어 뿌리를 깊이 내립시다.
- 아무도 보지 않는 홀로 있는 시간에 내 영혼의 뿌리가 그리스도께로 뻗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의인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서로 외롭지 않게 함께 뿌리를 내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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