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도망자에서 순례자로(창28:10-22)
죄와 불안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더 가까이 찾아오시며, 그 은혜 가운데 도망자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자의 삶으로 바뀝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때는 대개 평안할 때가 아니라 불안하고 실패하고 죄로 고통받을 때입니다. 로마서의 말씀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했습니다. 이것은 죄를 더 지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멀리 떠나지 않으시고 더 가까이 찾아오시며 고통받는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죄보다 크고 넓고 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오십니다.
도망자의 길에서 찾아오신 하나님 (10-22절)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은 얻었지만 원치 않는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이루어 가는 사람은 언젠가 원치 않는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바로 이 도망자의 길, 불안과 두려움과 죄의 대가를 치르는 그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죄성이지만, 불안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잠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깨어 있을 때가 아니라 지쳐 잠들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꾀가 많고 생각이 복잡한 야곱이 깨어 있었다면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은 내가 더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시편 127편 1-2절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키시기에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다만 예배 시간에 스스로 잠을 청하는 것은 믿음의 표현이 아닙니다. 잠은 우리의 모든 힘이 빠진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프로이트는 꿈을 그날의 찌꺼기나 무의식의 표출로 설명했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성경의 꿈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를 보여주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알려 주는 통로로 쓰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메시아의 잉태를 알리셨을 때나 바로와 바벨론 왕에게 꿈으로 말씀하셨을 때가 그렇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알았지만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부모의 믿음을 빌려 쓰는 믿음에서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2절, 요한복음 1:51)
야곱이 본 꿈에는 땅에 서 있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있었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이 사닥다리가 자신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이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쌓은 바벨탑으로는 하늘에 닿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내려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조건 없는 약속으로 붙드시는 하나님 (13-15절)
사닥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을 그대로 반복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잘나서도, 야곱이 거룩해서도 아닙니다. 야곱은 죄를 짓고 도망하며 불안 가운데 있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큽니다. 야곱에게는 보호와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더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맞춤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함께 걸으십니다 (16-17절)
잠에서 깬 야곱은 이곳에 하나님이 계셨는데 내가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만 계시지 않고 우리가 발 딛는 모든 곳에 계십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잘 때, 광야를 걸을 때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시편 139편의 고백처럼 어디로 피하든 주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 이야기처럼 가장 힘든 걸음은 주님이 우리를 업고 걸으신 걸음입니다.
도망자에서 예배자로, 순례자로 (18-22절)
야곱은 머리에 베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어 예배의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흥정하듯 서원했지만,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고 처음으로 주겠다는 말을 입에 올렸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도망자는 어디에 가든 숨어 사는 인생이지만 순례자는 머무는 곳을 예배의 자리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순례자는 모든 것을 취하지 않고 주고 나누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야곱의 여정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죄와 실패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 우리의 삶이 도피하는 길인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의 길인지 돌아봅시다.
- 부모의 믿음을 빌리지 않고 나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도록 힘씁시다.
- 잠자는 시간에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깁시다.
- 우리가 머무는 일터와 가정과 삶의 모든 자리를 예배의 자리가 되도록 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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