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사랑은 끝까지 남습니다 (고전 13:8~13)
은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쓰이는 도구라 사라지지만,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므로 끝까지 남습니다. 온전한 날을 소망하며 오늘 하루 사랑을 선택합시다.
사랑 없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따뜻한 감정을 노래한 글이 아닙니다. 은사 경쟁과 자랑, 파당이 가득했던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방언도, 예언도, 산을 옮길 믿음도, 모든 것을 구제하고 몸을 내어주는 희생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일 뿐입니다. 은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랑을 동기로 한 것인지, 나의 유익과 자랑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동사입니다
바울은 4-7절에서 열다섯 개의 동사로 사랑을 묘사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와 자랑, 교만, 무례, 자기 유익, 성냄, 원한, 불의를 기뻐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고린도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는 타협이 아니어서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진리를 위해 싸웁니다. 죄성을 거슬러 예수님처럼 행하는 일은 우리 의지로는 불가능하고, 성령의 열매로만 맺힙니다.
은사는 도구라 사라지고 사랑은 남습니다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사라지는 까닭은 은사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완전한 것이 오기 전, 부분적인 시대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도가 필요 없듯,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뵐 날에는 이 도구들이 기능을 잃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어서 그날에 더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지식은 나를 높이지만 사랑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조각일 뿐이며, 은사를 붙들고 다투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방식입니다. 은사 자체가 목적이 되면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지금은 희미하나 얼굴을 맞대어 볼 날이 옵니다
바울 시대의 거울은 고린도의 명산품인 청동 거울이었습니다. 청동 거울은 상이 선명하지 않고 왜곡되어 보였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금의 지식도 그렇게 희미하고 부분적입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하나님의 진리와 뜻이 분명히 드러나고, 우리도 주께서 나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됩니다. 나를 모태에서 택하고 지으신 분은 나를 이미 다 아십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하고 하나님의 뜻이 흐릿해 보이는 새벽도 온전한 것을 향해 한 걸음씩 가는 순례의 길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 제일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사라지는 예언, 방언, 지식과 대조되어 영원히 남습니다.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소망은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믿음은 보는 것으로, 소망은 성취로 바뀌지만 사랑은 그날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또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자 토대이며, 은사의 범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그 자체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은사와 헌신이 사랑을 동기로 하는지, 나의 유익과 자랑을 위한 것인지 돌아봅시다.
-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성령의 열매로 구합시다.
-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의 모든 결정에서 사랑을 선택합시다.
-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해도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뵐 날을 소망하며 낙심하지 맙시다.
-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온전하고 영원한 것을 붙드는 삶을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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