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

2010.09.17하용조요한1서 1:5-10

구원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데서 시작되며,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예수의 보혈 앞에 고백할 때 죄 사함과 깨끗함의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영생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 데서 온다 (13절)

요한일서는 믿는 자들이 자신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갈등 속에서 신앙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첫째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깊이 아는 데 있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시며 생명의 말씀으로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입니다. 멀리 초월해 계신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원의 확신이 흐려집니다

요한일서에는 죄라는 단어가 스물일곱 번 나올 만큼 이 책은 죄의 문제를 깊이 다룹니다. 죄 문제에 성경적인 해결을 갖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고, 전도할 용기도 사귐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죄가 마음에 은밀히 깔려 있으면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 보여도 기쁨이 사라지고 삶이 공허해집니다. 죄는 어둠 속에서 잉태되어 절망과 죽음을 낳으며, 사람은 빛을 이론상으로는 좋아하지만 자기 죄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 실제로는 빛을 피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5절)

하나님은 빛이시며 사랑이시라는 것이 요한서신의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사랑보다 빛이 먼저 나오는 것은 빛이 있어야 사랑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빛은 찬란한 영광이자 따뜻함과 안심을 주고, 빛이 비추는 곳에는 숨겨진 것이 없으며 거룩과 순결과 진리가 있습니다. 성냥불 하나라도 칠흑 같은 어둠을 순식간에 몰아내듯,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면 어두웠던 영혼과 육체에 불이 켜지고 죄악이 물러갑니다.

어둠 가운데 행하는 이중적인 신앙을 경계합니다 (6절)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도 어둠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와 기도와 찬송과 봉사에 열심을 내면서도 세상에 나가면 죄를 열심히 짓는 이중적인 삶입니다. 이런 신앙은 잘못된 것일 수 있으며,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없는 자이며, 진리의 탈을 쓴 거짓말을 잘하는 마귀의 속성을 닮아 있습니다.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죄를 고백하며 보혈에 씻깁니다 (7절)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받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며, 그래서 서로 불편한 일도 생깁니다. 죄가 씻겨진 뒤에도 인간은 또 죄를 짓기 때문에, 날마다 회개하며 보혈로 영혼을 적시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빛의 자녀입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죄 사함의 출발입니다 (8-9절)

현대인은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선하고 죄는 환경과 제도 탓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죄는 본성 속에 숨어 있어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들키지 않은 죄가 있을 뿐 누구나 욕심과 시기와 분노를 가진 죄인입니다.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며,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미쁘시기에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지키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죄인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합시다.
  • 죄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바꾸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에 의지하여 죄 사함의 약속을 믿읍시다.
  • 빛 대신 하나님을 영접하여 어둠 가운데 행하는 이중적인 삶을 돌아봅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우리의 죄 많은 영혼을 날마다 적십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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