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내눈에 보인대로 (요일2:15-17)
세상의 메시지는 우리를 목마르게 하고 결국 우리의 사랑과 판단을 빼앗습니다.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생명의 메시지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세상의 메시지에 젖으면 사랑이 그 메시지로 기울어집니다 (15절)
미디어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따라 사람을 만듭니다. 반복되는 메시지는 거짓도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며, 나치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는 라디오와 TV로 이 원리를 써서 독일 사회를 이념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섹스, 스포츠, 스크린으로 대중을 어리석게 만드는 흐름이 있습니다. 사랑은 나보다 어떤 대상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므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메시지는 결국 우리의 사랑과 판단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세상을 떠나라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메시지에 마음을 내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경계합시다 (16절)
세상의 메시지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육신의 정욕은 끊임없이 갈망하게 만들어서 채워도 더 음란해지게 하고,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욕망하게 하여 세일 광고 앞에서 판단력을 잃게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본래 허풍과 과장이며 진실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이나 남의 흉이 대화의 대부분이 되고, 사람들은 스펙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것들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난 것입니다. 눈에 보기 좋은 대로 따라가면 목마름과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세상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17절)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영원히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처럼 착각하지만, 눈앞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그것만이 우리 삶을 지켜 줍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미디어가 쏟아내는 메시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메시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목이 마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그 목마름이 채워집니다. 이 메시지가 생명의 메시지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하늘의 메시지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소리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메시지의 본질은 사랑과 기쁨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조건 없이 사랑받고 기쁨을 받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늘의 메시지를 들으셨기에 세상의 정욕과 자랑을 좇지 않으셨고, 십자가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까닭도 육신의 욕구와 소유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영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늘의 메시지가 내 안에서 강처럼 흐를 때 거듭남입니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은 어떤 형식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흐르듯, 하늘의 생명 메시지가 넘쳐흐르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메시지만이 목마른 대지를 적시고, 사랑에 굶주린 이 땅에 참된 빛과 소망과 생명이 됩니다. 세상의 메시지에 목말라 살 것인지, 영원한 생명의 메시지를 택할 것인지 오늘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메시지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합시다.
- 음란, 쇼핑, 스펙처럼 나를 끊임없이 목마르게 하는 욕망 앞에서 자유를 선언합시다.
- 남과 나를 비교하거나 자랑과 남의 흉을 줄이고, 얼굴과 삶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합시다.
-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오늘 받아들이는 결정을 하고, 그 사랑을 가족과 이웃에게 전하는 메신저가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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