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성령과 공동체_설교
성령이 임하신 교회는 건물이나 규모가 아니라 회개하고 용서하며 삶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특별한 은혜로 여기고 세상을 향해 헌신해야 합니다.
성도가 함께 만나 교제하는 것은 값진 특혜입니다
본회퍼는 『성도의 공동체』를 쓰면서 성도들이 서로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축복이 아니라 엄청난 특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만나기에 이 특별한 축복을 잊고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동독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몰래 모여 세 시간, 네 시간씩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하 동굴에서 예배를 드렸고, 북한에서 탈출한 과학자가 전한 이야기에서도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지하실에 숨어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신앙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은 특별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북한을 방문한 한 목사님에게 교회도 성경도 목사도 없던 곳에서 태어난 30대 청년이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가 없어도, 교회당이 없어도, 성경책이 없어도 교회는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공동체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임하셨고, 그 사람들이 바로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은 개인이 아니라 120명의 공동체에 임하셨으며, 예수님도 3년 동안 12명을 품고 목회하셨으니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하는 공동체가 세상을 이깁니다
교회가 커지고 전통이 생기면 올드 멤버와 뉴 멤버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자신이 교회를 방해하는 줄 모르는 터줏대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교회의 참된 모습은 서로 비판하거나 고발하지 않고 허물을 덮고 용서하며 격려하는 데 있습니다. 사소한 일로 편을 가르고 상처를 주며 다투는 교회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으로 품어져야 하며, 교회의 능력은 허물을 얼마나 감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의 외침에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했듯이,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서로 앞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례와 밥상으로 맺어진 한 가족입니다
구약의 할례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세워 주었듯이, 교회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고 광야에서 40년을 훈련받은 뒤에야 약속의 땅에 들어갔듯이, 믿음도 훈련을 거쳐 자라납니다. 교회는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는 밥상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힘은 건물의 규모나 돈, 권력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습니다. 한 장로교회의 여성들은 수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한 뒤 오후에 둘씩 짝을 지어 암 환자를 찾아가 빨래와 청소를 도왔다고 합니다. 성경 공부한 만큼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나누고 전하며 세상을 향해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의 필요에 민감했고, 소유를 나누며 공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나눔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구원 공동체이며 전도 공동체이고 선교 공동체이므로, 잃어버린 한 영혼을 끝까지 찾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온누리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선교사로 나가고 있으며, 금년에 선교사 100명을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주일에만 나오는 교인은 10년이 지나도 영적 수준이 그대로이지만, 대가를 치르며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와 공동체의 축복을 깨닫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바라봅시다.
- 허물을 들추기보다 덮고 용서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교회가 됩시다.
- 구역과 순 모임에 자리를 지키며 삶과 기도를 나눕시다.
- 교회 안에서 연약한 이들을 찾아가 돌보는 봉사에 함께 힘씁시다.
-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