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당신이 죽은 1분 후 (눅 16:19~31)
이 세상의 부나 가난이 죽음 이후를 결정하지 않으며, 자기 집착에 빠진 삶은 지옥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더 좋은 것을 준비하는 삶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죽은 1분 후를 말씀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평등이 아니라 역전으로 이어집니다 (19-23절)
예수님은 이름 없는 부자와 이름을 받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죽음 이후를 보여주십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배옷을 항상 입고 날마다 잔치를 즐겼지만, 그의 한 생애를 평가하는 말은 결국 '부자'라는 한 단어뿐이었습니다. 나사로는 대문 앞에 버려져 상처를 안고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둘을 평등하게 끝내지 않았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고 부자는 하데스의 고통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죽음은 위대한 평등일 뿐 아니라 위대한 역전이 될 수 있습니다.(중략)
부자의 죄는 자기 집착이었습니다 (24-25절)
부자는 죽은 뒤에도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 혀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물 한 방울을 소중히 여기지 않던 그가 이제 그것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부유함 자체가 그를 고통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부유함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고 문 앞의 나사로에게 무관심했던 죄가 문제였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좋은 것을 받든 나쁜 것을 받든, 우리의 목표는 영원히 누릴 더 좋은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도 인격과 기억은 그대로 남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알아보고, 나사로를 알아보고, 자기 형제가 다섯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지성과 기억과 인성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부자의 교만과 자기 사랑도 변하지 않아서, 그는 여전히 나사로를 심부름꾼처럼 부리려 합니다. 지옥은 고통 속에서도 회개하지 않는 영혼들이 모인 곳이며, 결국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갇혀 홀로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얼마나 권세가 있었든지 죽은 뒤의 운명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은 뒤의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26절)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커다란 틈이 있습니다. 죽은 뒤에는 제2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한 번 들어간 세계에서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부자는 다섯 형제가 고통의 자리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기록된 말씀이 증거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가 살아나 설교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죽은 1분 후를 준비합시다 (31절)
기적은 그 자체로 믿음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앞에서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주는 것은 분명하게 기록되고 이미 예언되어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직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다섯 형제처럼, 우리도 지금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를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은 나사로와 같은 운명에 이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자와 같은 운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중략)
삶에 적용하기
- 죽은 1분 후를 준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 물질과 권세가 있을 때에도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문 앞의 이웃을 돌아봅시다.
-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 날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시다.
- 아직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의 죽은 1분 후를 위해 말씀을 전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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