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열매로 알리라 (눅 6:43~49)
겉으로 맡은 역할과 등장인물의 모습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을 실제 내면의 인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속사람에 심긴 성령의 생명이 자라 겉사람까지 바뀔 때 참된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의 신앙이 바위 위에 세운 집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역할의 가면이 아니라 실제 인격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폴 투리니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사람이 등장인물처럼 맡은 역할과 기능에 익숙해져 자기 내면의 인격을 잊고 산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과의 대화에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이나 위치, 가족 안의 역할로 우리를 만나지 않으시고 중심에 있는 실제 인격으로 만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등장인물처럼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의 껍데기를 내려놓고 내 중심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속사람에 심긴 생명이 자라 겉사람까지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겉사람을 찾아오시지 않고 속사람 안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거듭남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은 이루어 가는 과정이며 아직 완성되어 가는 중입니다. 속사람의 생명이 점점 자라 결국 겉사람까지 변화시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도 즉시 싹이 보이지 않듯, 속사람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와도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나무처럼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는 강제로 맺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결과입니다
신앙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을 지키는 율법적 생활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신앙은 to do가 아니라 to be이며, 존재에서 행위가 나옵니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고, 자란 생명에는 합당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열매를 매지하라고 당위성으로만 강조하면 신앙의 본질을 다시 율법으로 만들게 됩니다. 열매의 가장 정확한 뜻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열매는 법을 넘어 흘러나오며, 나무는 열매로 분별됩니다 (43-45절)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압니다. 설교자는 봉사와 직분도 등장인물의 역할에 그치면 열매가 아니라고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성령의 열매에 대해 법이 이를 금지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들어, 열매는 어떤 법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스테반 집사가 돌에 맞는 순간에도 천사의 얼굴 같았던 것은 연기가 아니라 열매였다고 말합니다.
고백이 열매로 이어지지 않는 두 가지 이유를 살펴봅니다 (46-49절)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까닭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백이 속사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해야 하기에 하는 등장인물의 고백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 31-32절도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 모습을 폭로합니다. 둘째는 고백은 진실하지만 겉사람의 습관과 역할에 막혀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때 요한복음 15장 2절의 가지치기처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겉사람을 끊어내야 합니다. 속사람의 생명이 겉사람을 이기고 나갈 때 고백은 삶의 열매가 됩니다. 기초 없이 지은 집은 시련에 무너지고, 실천으로 열매 맺은 신앙은 바위 위에 세운 집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나는 어떤 나무인지 돌아보며, 내 안에 심긴 영적 생명이 자라 맺는 열매인지 점검합시다.
- 교회 안의 봉사와 직분이 등장인물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지 점검해 봅시다.
-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겉사람의 습관과 역할을 끊어내는 영적 가지치기를 실천합시다.
-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인지 되돌아봅시다.
- 속사람에 있는 성령의 생명이 자라 삶의 현장에서 열매로 드러나도록 기도하며 말씀을 행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