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사명을 남긴 이별 (행 20:17~38)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의 눈물의 이별은 사명을 나누는 이별이었습니다. 겸손과 눈물의 사람은 성령의 강권하심을 따라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살고, 양떼를 돌보며 주는 자로 삽니다.
이별이 서로를 성숙하게 하는 관계 (36-38절)
복된 관계는 이별이 감동적일 뿐 아니라 그 이별이 서로를 성숙하게 합니다. 바울은 오순절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기에 에베소에 들르지 못하고, 밀레도 항구로 3년간 사역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이별합니다. 그들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소리 내어 울며 바울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배 타는 곳까지 전송했습니다. 평소 함께 기도하던 관계였기에 이별의 순간에도 기도할 수 있었고,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했기에 더 슬펐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면 매 순간 깊은 은혜를 누립니다.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와 영향력입니다.
겸손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헌신 (19-20절)
바울은 에베소에서 손이 닿으면 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의 통로였지만, 그 기적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능력과 은사보다 겸손한 태도와 눈물의 헌신이 더 중요했습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새벽마다 말씀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면 심장이 뛰는 것 같다고 하셨고,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에서 눈물은 눈에서 하늘로 거꾸로 흐른다고 썼습니다. 눈물에는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과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며 흘리는 비전의 눈물이 있습니다. 시편 126편 5-6절처럼 비전의 눈물은 기쁨의 추수로 이어집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겸손한 눈물입니다.
성령의 강권하심은 계획을 이끕니다 (22절)
계획 없이 사는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도시 중심, 회당 먼저, 로마가 닦은 길,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 우선이라는 계획이 있었지만, 성령께서 아시아 대신 마게도니아로, 에베소 대신 예루살렘으로 계획을 바꾸셨습니다. 강권하심은 평소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이 경험합니다. 20대에 성공을 꿈꾸며 예루살렘에 갔던 바울은 60대에 하나님의 꿈,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러 갑니다. 그곳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이 가득해 인간적으로는 가기 싫은 곳이었습니다. 한국 로잔위원회 의장이던 때 4차 로잔대회 유치를 두 번 사양했지만, 한 장로님의 "왜 도망가십니까"라는 말에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알고 순종했습니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마펫 박사가 품은 소망도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사명이 있습니다 (23-24절)
성령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고난이 기다린다고만 알려 주셨을 뿐 가라 마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그렇기에 내가 가야 한다고 해석하고,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육신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며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죽음 앞에 설 때 피하려 할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지에서 믿음이 증거됩니다. 건강을 돌보되 복음을 위해 생명을 요구받으면 기꺼이 드릴 믿음이 필요합니다. 양화진 묘지에 잠든 선교사님들이 육신의 생명만 지키려 했다면 이 땅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먼저 살피는 지도자 (28절)
성령께서 장로들을 감독자로 세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양떼를 살피는 것보다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는 그 리더의 영향력 이상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핀다는 것은 자신이 목자 되신 예수님을 앞서 잘 따라가고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목자는 예수님뿐이며, 멀리 보지 못하는 양떼는 바로 앞의 양을 따라갑니다. 앞선 양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예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면 뒤따르는 양도 모두 길을 잃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 뒤따르는 양들이 함께 주님을 따르게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33-35절)
바울은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내지 않고, 자신과 일행의 필요를 손수 벌어 쓰며 모범을 보였습니다. 처음 복음을 듣는 이들이 경제적 필요를 염려할까 봐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받는 자의 스피릿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적어도 주는 자의 스피릿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녀의 복을 구할 때도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자의 복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우리나라도 연약한 나라들과 강도 만난 이웃들에게 주는 나라가 되기 위해 복을 구해야 합니다. 배워서 남 주고 벌어서 남 주는 것이 바울의 사역이자 우리의 철학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오늘이 마지막 만남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모든 관계를 소중히 만납시다.
- 능력과 은사를 자랑하기보다 겸손과 비전의 눈물로 주님을 섬깁시다.
- 내가 하기 싫어도 성령께서 마음을 주시는 일에 순종하는지 돌아봅시다.
- 육신의 생명보다 영원한 생명과 복음의 사명을 더 귀하게 여깁시다.
- 자신이 예수님을 잘 따르고 있는지 먼저 살피고,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로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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