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질문 (욘 4:1~11)

2016.07.31이재훈요나 4:1~11

하나님은 회개한 니느웨를 기뻐하며 용서하셨지만 요나는 그 은혜에 분노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하나님은 마음과 삶을 움직이지 못하니, 우리도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니느웨를 기뻐하신 하나님과 분노한 요나 (1절)

니느웨 백성 전체가 회개하고 돌이키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려던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기뻐하셨습니다. 선지자인 요나라면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기뻐하지 않았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1절의 말씀을 직역하면 마음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분노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니느웨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정반대로 분노하는 요나의 모습, 이 대조가 요나서의 핵심입니다. 매튜 헨리 목사님의 말처럼 죄인이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있듯이 성도가 연약함 가운데 있으면 하늘에 큰 슬픔이 있습니다. 요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머리로 아는 하나님과 마음에 없는 하나님

요나는 2절의 고백에서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재앙을 거두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은 출애굽기 34장 6-7절에서 모세에게 선포된 말씀과 이어집니다. 요나는 이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는 하나님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 마음과 삶 속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줄 의무가 없는 존재가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에게 바로 그런 은혜다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큰아들처럼,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죽기를 구하는 요나와 불의한 분노 (3절)

요나는 3절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간구하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옳은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구약의 엘리야도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을 예언한 뒤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실제로 쫓기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요나는 니느웨 백성이 그를 쫓아오지도 않았는데 죽기를 구했습니다. 요나의 분노는 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불의한 분노입니다. 의로운 분노는 사람을 살리지 죽이지 않습니다.

첫째 질문: 내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4-5절)

하나님은 요나에게 내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베드로에게도 질문하셨습니다. 단정하지 않고 질문으로 가르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요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순종의 침묵이며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성 밖 동편에 초막을 짓고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하루 만에 니느웨를 떠난 그는 멸망을 기대하는 구경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요나의 머리 위에 박넝쿨을 준비하셨고, 요나는 그 그늘로 심히 기뻐했습니다.

박넝쿨을 향한 분노가 드러낸 마음 (6-9절)

다음 날 새벽 하나님이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고, 요나는 다시 힘이 빠져 죽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이 박넝쿨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요나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라고 대답합니다. 박넝쿨은 요나가 심거나 기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넝쿨 하나를 잃고 분노했습니다. 이 분노는 넝쿨 때문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환경을 향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가 치솟는다면 우리 영혼의 문제를 돌아볼 때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좁고 좁은 마음을 이렇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셋째 질문 앞의 침묵과 우리의 마음 (10-11절)

하나님은 요나가 가꾸지도 기르지도 않은 박넝쿨도 아꼈다면, 12만 명이 넘는 사람과 많은 가축이 있는 니느웨를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요나서는 이 질문으로 끝나며 요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 침묵이 반항인지 인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항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침묵은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우리 민족만 생각하고 땅끝의 선교사님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요나와 같은 좁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들을 함께 품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도 품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품읍시다.
  • 머리로 아는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돌아봅시다.
  • 내 분노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 돌아보고 하나님께 솔직히 아룁시다.
  • 우리 민족을 넘어 땅끝의 선교사님들과 복음이 필요한 이들을 품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서빙고 1부 예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