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내가 어찌 용인하겠느냐/너의 소유가 무익하니라/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나님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지만, 겸손히 자복하는 자를 용서하고 고쳐 회복시키십니다. 참된 신앙은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윤리로 드러납니다.
깨어 있지 못한 파수꾼은 백성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하나님은 파수꾼 노릇을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소경이고 짖지 못하는 개와 같았으며, 잠만 좋아하고 탐욕이 심하여 양을 이끌지 못하는 몰지각한 목자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방 세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치셨고, 의인이 죽어 가도록 방치되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지도자가 깨어 있지 않으면 백성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 이 말씀의 첫 경고입니다. 우리 역시 맡겨진 자리에서 깨어 있는지,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종교를 섞는 우상 숭배가 가장 무섭고 처절한 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교 형식은 버리지 않은 채 이방 신들을 섞었습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음행을 하고, 골짜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여 제물로 바쳤으며, 높은 산에 잠자리를 만들어 제사를 드렸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이 가장 무섭고 잔인합니다. 한 저자의 연구에서도 잘못된 종교를 선택한 나라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인권이 없었으며, 기독교가 전해진 나라들은 부유한 문화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우상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거짓 신이며 귀신과 사탄의 역사입니다. 참 하나님을 잃으면 인간은 반드시 거짓 신을 섬기게 됩니다.
신앙은 윤리를 잃으면 타락합니다
종교적 열심은 많아도 신앙에 윤리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가 잘못된 줄도 모르게 됩니다. 신앙은 윤리적이어야 하며, 신앙이 윤리를 잃으면 사회에 대한 공헌도 잃고 극단적인 잘못으로 빠지게 됩니다. 모든 우상 숭배에는 윤리가 없습니다. 점치는 사람과 무당에게는 자기 쾌락과 이익, 물질적 탐욕과 육적 탐욕만 있을 뿐, 가난한 자를 생각하거나 불의를 타파하려는 윤리는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종교적 열심을 넘어 이웃을 향한 정의와 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자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면서도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짐승이나 사람의 피를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신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자복하고 돌아오는 자녀를 용서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다투지 않으시고 분노를 그치시며, 탐심으로 떠난 백성을 고쳐 위로를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먼 데 있는 자에게든 가까이 있는 자에게든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회복 약속입니다. 겸손히 자복하여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열어주십니다.
참된 금식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금식했는데 왜 응답이 없느냐고 묻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몸을 학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냄새 나고 더러워 곁에 있기 싫은 이웃을 돌보는 것이 참된 금식입니다. 노숙자가 교회의 도움으로 회복되어 가족에게 돌아간 일, 노인과 어린아이를 돌보는 복지 사역, 농어촌 교회를 살리는 일이 그 사례입니다.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울 때 축복과 회복이 임합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불의와 가난이 없어야 하며,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겸손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 깨어 있는 파수꾼으로서 맡겨진 자리를 성실히 지킵시다.
- 종교적 열심이 이웃에 대한 윤리로 이어지는지 돌아봅시다.
- 냄새 나고 외면받는 이웃을 찾아가 돕는 참된 금식을 실천합시다.
- 교회가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힘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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