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7가지 치명적인 죄(3) - 분노 (민 20:7~13)
분노는 하나님이 주신 도덕적 저항 능력이지만 죄로 왜곡되기 쉽고, 선한 분노는 동기와 방식이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내·용서·긍휼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날마다 살펴야 합니다.
분노의 본질은 도덕적 가치 판단에 있습니다
분노는 단순한 불쾌한 감정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지 않은 것에 저항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뿌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고, 그 목적은 거룩과 정의입니다. 인간이 처음 분노해야 했던 대상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속인 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그 거짓에 저항하지 않았기에 분노는 악한 방향으로 왜곡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 안에도 악에 분노할 능력은 남아 있지만, 우리 안에는 선한 분노와 악한 분노가 함께 있습니다. 분노를 가치 중립적이라거나 무조건 표출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진리가 아닙니다.
내 분노가 선한지 세 가지 질문으로 분별합시다
첫째, 이 분노의 동기가 이기적인 것인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속한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으로 분노하기 쉽습니다. 둘째, 분노의 내용이 십계명에 어긋나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어기는 악에 분노하시며, 십계명과 상관없는 일에 화를 낸다면 대부분 이기적인 분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편 145편 8절과 9절은 하나님이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분노하실 때에도 돌이키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반면 우리의 분노는 급하고 인내와 용서가 없으며 복수심에 불타기 쉽습니다.
모세는 물을 내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긋났습니다 (7-11절)
가데스바네아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으시고 물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위에 대고 말하여 물을 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너희 불순종하는 사람들아'라고 부르며 물을 내는 능력이 마치 자신과 아론에게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물은 나왔지만 지시와 다른 방식이었고, 그 행동에는 분노가 실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전에도 이집트인을 죽이고 금송아지를 부수어 백성에게 마시게 하는 등 과도하게 분노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의 분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분노는 악합니다 (12-13절)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분노의 능력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죄와 악에 저항하는 데 있습니다. 분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면 선한 분노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죄가 섞인 악한 분노입니다. 동기가 선하더라도 방식이 인내, 용서, 긍휼이 아니라면 분노는 악하게 변질됩니다. 마틴 루터 킹과 윌버포스, 그리고 3.1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역사를 바꾼 분노는 동기와 방식이 모두 선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동기가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의를 위한 것인지 날마다 살펴봅시다.
- 분노가 십계명에 어긋난 일에 대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기적인 분노로 여기고 끊어냅시다.
- 분노를 표현할 때 인내, 용서, 긍휼, 친절로 노하기를 더디하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릅시다.
-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자신의 분노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돌아봅시다.
- 선한 분노가 거룩한 열매를 맺도록 성령님을 더욱 의지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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