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해같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교회 (삿 5:1~12, 31)
해는 깊은 밤을 지나 떠오릅니다. 자원하여 헌신하고, 주의 원수를 대적하고, 주를 온전히 사랑하는 교회는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 해처럼 솟아오릅니다.
가장 어두운 때에 한 사람을 깨우시는 하나님 (6-8절)
설립 41주년을 맞는 이 한 주간, 드보라가 승리 후에 부른 노래에서 교회의 기도 제목을 발견합니다. 31절의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솟아오르는 해같이 힘차게 하소서"라는 기도 뒤에 그 땅에는 40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해는 깊은 밤을 지나 떠오르므로 이 기도는 시대가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보여줍니다. 큰길은 비었고 여행자들은 샛길로 다녔으며, 군인 4만 명에게 방패 하나 창 하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가나안의 철병거가 아니라 백성이 새 이방신들을 선택한 데 있었습니다. 교회의 위기도 사회 환경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속 우상숭배에서 옵니다.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드보라와 바락을 깨우셨습니다.
어둠 속의 회개가 불러온 1907년의 아침
한국교회에도 그런 아침이 있었습니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성도들이 죄를 고백하며 통곡했고, 이것이 평양 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외교권을 빼앗긴 1905년 을사늑약의 어둠이 있었고, 성도들은 나라가 무너진 이유를 자기 마음속의 죄와 우상숭배에서 찾았습니다. 을사늑약에 홀로 반대한 참정대신 한규설은 원인을 교육에서 찾아 이상재 선생과 조선교육회를 만들었고, 그 아들이 세운 학교는 올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 이 땅의 많은 교회와 예배도 그 부흥의 열매입니다. '내가 나선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나', '나 한 사람만 편안하면 된다'는 생각이 어둠을 불러옵니다.
해처럼 솟는 교회는 자원하여 헌신합니다 (2-9절)
해처럼 솟아오르는 교회의 첫째 모습은 희생과 헌신에 자원하는 이들이 넘치는 것입니다. 2절과 9절에서는 '자원하여'가 반복됩니다. 시스라의 철병거 900대와 싸우는 일은 자살행위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지도자들이 나서자 자원하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앞장선 지파는 연약하고 주목받지 못한 스불론과 납달리였습니다. 힘 있어 보이던 르우벤, 길르앗, 아셀 지파는 머뭇거리며 양 우리와 해변에 남아 있었습니다. 드보라는 이를 노래로 역사에 남겼고, 하나님은 누가 나서고 누가 남았는지 주목하십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하겠지, 우리 마당만 살피면 되지' 하는 생각은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주의 원수를 끝까지 대적하는 기도 (31절)
드보라는 '나의 원수'가 아니라 '주의 원수'가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세력을 두고 한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력의 멸망을 구하는 기도이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3문도 악한 계략을 무너뜨려 달라고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12장의 교회는 기도할 뿐이었으나 헤롯 아그립바는 주의 사자에게 죽었습니다.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혹독한 박해도 10년을 가지 못했고,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의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너뜨리셨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박해하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세력과 잘못된 사상이 있으므로 그 세력을 분별해야 합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처럼, 태양이 아닌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만이 해처럼 솟아오릅니다.
용감함이 아니라 주를 향한 온전한 사랑
드보라는 용감한 자가 아니라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처럼 솟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은 마음과 뜻과 힘과 성품을 다하는 것이며, 그 마음에 다른 우상이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에베소 교회는 수고와 인내와 바른 교리가 있었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큐티와 일대일, 복음 전도가 사랑 없이 제도와 프로그램으로만 움직이면 에베소 교회가 됩니다. 사도행전 4장의 교회는 위협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고 더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목회자가 감옥에 갇혀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중국 성도들과 달리, 자유로운 우리가 잃은 것은 담대함과 순전한 사랑입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헌신하고 대적하고 사랑하는 일은 떠오르는 해처럼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사무엘하 23장에서 공의로 다스리는 이를 아침 햇살에 견주었고, 말라기 4장 2절은 '의의 태양이 떠올라 광선으로 치료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서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3절은 의인들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해가 어디서나 보이듯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십니다. 교회가 로마의 박해와 역사의 위기 속에서도 떠오른 것은 정치력이나 사람 수 때문이 아니라, 어둠을 뚫고 부활하신 의의 태양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마음속에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우상이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 '누군가 하겠지' 하며 머뭇거리지 말고 복음과 하나님 나라 사역에 자원하여 나섭시다.
- 나의 원수가 아니라 주의 원수가 무너지도록 기도하고, 그 세력을 분별합시다.
- 큐티와 일대일, 복음 전도가 제도에 그치지 않도록 주님과 영혼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 아침 해를 볼 때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교회가 어둠을 밝히도록 기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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