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결혼 잔치의 비유 (마22:1-14)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된 잔치와 같아서, 자격 없는 사람까지 차별 없이 초대받아 함께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초대를 거절하지 말고 믿음의 예복을 입고 그 잔치에 참여합시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된 삶입니다
하늘나라를 죽은 뒤에 시작되는 삶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이 세상과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사후에 시작되는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이 땅의 삶이 영원한 삶과 이어져 있지 않다면 그 삶은 안개처럼 무의미하고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기쁨과 행복과 축복이 함께 있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절기의 잔치와 십일조는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도록 여러 절기를 잔치로 제정하셨습니다. 신명기 14장은 십일조를 가지고 가기 어려우면 은으로 바꾸어 가서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데 있습니다. 신명기 15장과 장막절의 규례에는 자녀, 종, 레위 사람, 이방인, 고아, 과부가 모두 함께 기뻐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분과 재정과 가족 배경을 내려놓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절기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은 합당한 변명을 댔지만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2:1-14 본문 중 비유의 흐름)
왕은 아들의 결혼 잔치에 초대했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밭과 장사를 이유로 든 첫 번째 부류는 얼핏 성실해 보이는 변명을 했으나, 왕의 초청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그 변명은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종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은혜를 악으로 갚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역사를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잔치를 계속 진행하십니다. 왕은 길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구별하지 말고 잔치에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잔치는 자격이 없다고 여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자격 없는 자가 받은 초대와 예복은 회개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여겨 돈, 위치, 지식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오기를 거절했습니다. 반면 세리와 죄인들은 자격 없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을 만나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잔치에 들어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지적한 장면은, 예복을 받는 것이 믿음이고 갈아입는 것이 회개를 뜻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복을 갈아입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잔치의 축복을 누리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은혜로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랑이 함께 있을 때는 금식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19-20절)
예수님은 신랑이 함께 있는데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금식할 수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유대 결혼에서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고, 신랑이 나타나는 순간이 결혼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면 세상의 양식에 의존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며, 그 기쁨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안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초청을 생활의 의무를 핑계로 거절하지 맙시다.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봅시다.
- 은혜로 초청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예복을 갈아입는 마음으로 회개합시다.
- 교회를 차별과 구별 없이 함께 기뻐하는 기쁨의 공동체로 세워 갑시다.
- 예배 가운데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주변 사람들을 초대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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