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11)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빌 2:12~18)

2026.07.26이재훈빌립보서 2:12~18

구원은 은혜로 받은 선물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소원과 행할 능력을 주시기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그 구원을 삶에서 이루어 갑니다.

명하신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

주후 405년 로마의 한 모임에서 어거스틴의 고백록 10권 29장의 기도가 낭독되었습니다. 당신이 명하신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바를 명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명하신 것을 행할 능력도 함께 주시라는 뜻이며, 은혜를 주신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따르겠다는 순종의 고백입니다. 그 자리의 브리튼 출신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면 인간에게 이미 행할 능력이 있는데,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나약한 신앙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의 시작이었고,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펠라기우스의 생각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오늘도 있으며, 빌립보서 2장 12절이 그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이들에게 주신 말씀 (12절)

에베소서 2장 8절은 구원이 선물이라고 하는데 12절은 구원을 이루라고 하니, 어떤 이는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못 본 척 지나갑니다. 그러나 12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며,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십자가까지 순종하신 11절의 찬양을 이어받습니다. 성경 오해의 절반은 최초의 수신자를 놓치는 데서 시작되는데, 빌립보 성도들은 이미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고 순종해 온 구원받은 이들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대로 하나님이 그들 안에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의 Work out your salvation은 구원을 받으려고 일하라는 뜻이 아니라, 받은 구원으로부터 삶을 이끌어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우리가 이룹니다 (12-13절)

12절만 읽으면 내 노력에 달린 것 같고, 13절만 읽으면 우리가 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 절 사이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이룰 수 있고 또 이루어야 합니다. 12절은 인간의 책임을, 13절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을 강조하며, 이 둘을 떼는 순간 복음은 무너집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받은 용돈으로 생신 선물을 사 와도 아버지는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은혜로 한 일이면서 동시에 아들이 한 일입니다. 구원에는 과거의 칭의, 미래의 영화, 그 사이의 현재의 구원이 있고,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는 이 현재의 구원을 사는 삶입니다.

덮인 먼지를 걷어내는 구원, 자녀의 두려움

1512년에 완성된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는 수백 년간 촛불의 그을음과 먼지에 덮여 어두워졌습니다. 지난 세기 말 복원 작업으로 장밋빛, 연두빛, 진주빛, 하늘색이 드러났는데, 복원가들은 붓질 하나 보태지 않고 덮인 것만 걷어냈습니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구원이 이미 주어졌고, 옛 습관과 세상의 먼지가 그것을 덮고 있으니 그것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두렵고 떨림은 구원을 잃을까 하는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하는 자녀의 두려움입니다. 바울은 가장 많이 수고했지만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은혜를 알수록 더 부지런하고 성실해집니다.

불평 없는 입술에서 기뻐하는 마음까지 (14-15절)

14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분쟁 없이 하라고 합니다. 불평은 개인의 입술에서, 분쟁은 공동체 안에서 나옵니다. 외국어는 몇십 년을 배워도 더듬거리지만 불평은 배우지 않아도 유창합니다. 불평이 제거되어야 할 첫째인 이유는,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5절의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는 광야 세대를 가리키며, 이스라엘은 칼이 아니라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는 원망과 불평에 넘어졌습니다. 모든 원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어둠을 이기는 길은 어둠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는 것이며, 불평 없는 삶이 어두운 세대에서 별처럼 빛나는 모습입니다.

피를 붓는 자리에서도 기뻐하는 바울 (17-18절)

구약의 제사에서는 제물을 드린 뒤 마지막에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삶과 헌신을 제단 위의 본 제물로, 자기 생명을 그 위에 덤으로 붓는 전제로 비유하며, 내 피가 부어지더라도 기뻐하겠다고 감옥에서 고백합니다. 광야 세대와 바울은 둘 다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13절이 둘을 갈랐습니다. 광야 세대는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일하심을 믿지 못했고, 바울은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서 일하심을 끝까지 믿어 원망 대신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장식장에 보관하는 선물이 아니라 날마다 입고 다니는 선물이며, 불평 없는 입술에서 시작하여 삶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生活への適用

  • 받은 구원을 장식장에 두지 말고 날마다 삶에서 이루어 가는 선물로 누립시다.
  • 12절과 13절을 떼어 읽지 말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신다는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 어떤 일을 하든지 불평과 분쟁 없이 하며, 입술의 원망을 걷어냅시다.
  •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종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하는 자녀로 삽시다.
  •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를 손해로 여기지 말고, 바울처럼 기쁨으로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갑시다.

この要約は説教の字幕をもとに自動で作成したもので、実際の説教と異なる場合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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