礼拝と御言葉
그가 누우셨던 자리를 보라 (막16:1-11)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덩이는 이미 옮겨졌고,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고, 주님을 알아보며, 빈 무덤을 떠나 살아 계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부활은 걱정과 근심의 돌덩이를 이미 옮기셨습니다 (1-4절)
여인들은 향품을 들고 무덤에 가면서 입구의 큰 돌을 누가 굴려 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가 보니 돌덩이는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며 불안해하는 근심의 이유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옮겨 놓으셨습니다. 어둠 같은 실패와 고통, 그리고 마지막 두려움인 죽음까지도 부활은 깨뜨렸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활은 우리의 모든 걱정을 승리와 영광으로 바꾸십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5-7절)
천사는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뜻이며,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우리를 가두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완성된 십자가에 있습니다. 구원을 두고 흔들리는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이미 죄값을 치르셨다는 말씀 앞에 서십시오.
빈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십시오
여인들은 빈 무덤의 자리에서 시신만 찾다가 곁에 서 계신 부활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함께 걸으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그들의 눈이 열렸을 때, 주님은 이미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출석하는 데 머물지 말고,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빈 무덤을 떠나 전하는 증인이 되십시오
천사는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명합니다. 무덤은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데, 예수님은 살아나셨으니 예수 없는 무덤을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 건물이나 직분, 제도에 안주하며 살아 계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다면, 빈 무덤과 같은 껍데기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것도 무덤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으로 부활을 믿고 증거한 막달라 마리아 (8-11절)
여인들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일곱 귀신에서 자유롭게 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부활을 믿을 수 있었고,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믿음은 보여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는 것이며, 그 믿음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입니다.
生活への適用
- 걱정과 염려의 돌덩이를 주님께 맡기고 두려움 없이 살아갑시다.
-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와 부활에 있음을 붙들고 흔들리지 맙시다.
- 교회 건물과 직분에만 머물지 말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구합시다.
-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깨닫도록 눈을 열어 말씀을 들읍시다.
- 부활의 증인으로서 만난 예수님을 삶으로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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