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9) 잃어버림으로 찾는 목숨 (마 16:24~26)

2026.07.12이재훈마태복음 16:24~26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제자의 입학 자격입니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넘기고 예수님 뒤를 따를 때 영원한 목숨을 얻습니다.

제자의 입학 자격, 체험으로 아는 말씀 (24절)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은 소수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자의 졸업 자격이 아니라 입학 자격이며, 모든 성도가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에는 정보로 아는 지식과 체험으로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아무리 읽어도 타 보아야 알듯, 하나님의 말씀도 삶으로 행하며 체험해야 합니다. 말씀이 익숙하다고 아는 것은 아니며, 나의 언어와 삶으로 간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려던 베드로의 문제

24절의 "그때"는 베드로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 칭찬받았지만,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자 "그리 마옵소서"라고 막아섰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따른다"와 "내 뒤에"는 같은 헬라어이니,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등 뒤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계획과 욕심을 결재해 달라는 기도, 나를 돋보이려는 봉사와 헌신으로 예수님 앞에 서려 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로막고 사탄의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은 나를 모른다고 선언하는 것

마태복음 26장 74절에서 베드로가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한 단어가 "자기를 부인하라"에 쓰인 단어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을 향해 "나는 너를 모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잉크 한 방울이 물 전체를 오염시키듯 자아 전체가 죄로 오염되었으니, 칼뱅의 말처럼 옛 자아는 고쳐 쓸 대상이 아니라 죄의 공장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학대하거나 금욕하라는 뜻은 아니며, 고행은 오히려 자아를 강하게 합니다. 존 스토트가 말한 대로 내 길을 내가 정할 권리를 내려놓는 주권의 문제이며, 마지막까지 붙드는 내 의지를 주님께 반납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다 자기를 잊는 어머니들처럼, 예수님만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자기 십자가는 옛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당시 십자가는 사형틀이었고, 사형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옛 자아가 죽어야 할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환경이나 핍박이 아니라 나의 옛 자아입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와서 죽으라고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6절대로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옛 자아가 발버둥 쳐도 "너는 십자가에서 죽은 존재다"라고 끊임없이 여겨야 합니다. 내 잘못으로 생긴 고생,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고난, 자식 양육이나 질병은 십자가가 아니며,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만 십자가입니다.

잃어버림으로 얻는 영원한 목숨 (25-26절)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오 나를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이 더 유익한지 계산해 보라는 요구입니다. 육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영혼을 포기하겠습니까, 영혼을 얻으려고 육신의 목숨을 내려놓겠습니까. 28세에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짐 엘리엇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버려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자는 어리석지 않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무게는 천하보다 무거우며, 천하는 세상과 함께 사라지는 유한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몸소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고 부활하셔서 그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길을 가 보았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음성입니다.

날마다 지는 십자가, 순종의 못

누가복음 9장 23절에는 "날마다"가 덧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 큐티 때 지고 나간 십자가를 회의실이나 화장실, 시장 어딘가에 버리고 가기에 날마다 다시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못이 있어 벗어버릴 수 없었지만, 고난주간 십자가 대행진에서 본 십자가처럼 우리의 십자가는 바퀴가 달려 편할 때만 밀고 다니기 쉽습니다. 우리 십자가의 못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힘든 것은 못이 손과 발을 뚫듯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못을 감당할 때 목숨을 잃는 것 같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다시 얻으며, 그 길이 진짜 제자의 삶입니다.

Mise en pratique

  • 예수님 앞에 서서 내 계획을 결재받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 뒤에서 따릅시다.
  • 옛 자아에게 "나는 너를 모른다"고 선언하며 내 의지까지 주님께 돌려드립시다.
  • 옛사람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를 기꺼이 감수하며 날마다 십자가를 집시다.
  • 아프더라도 순종의 못을 박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제자로 삽시다.

Ce résumé a été généré automatiquement à partir des sous-titres et peut différer de la préd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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