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다윗 (삼상 23:1~14)

2013.09.08이재훈사무엘상 23:1~14

하나님은 성공과 축복으로만 믿음을 세우지 않으시고, 실패와 억울한 고난을 통해서도 믿음을 세우십니다. 다윗의 도망 생활은 자기 안의 죄를 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연단하신 광야학교였습니다.

성공과 고난, 두 가지 방법으로 믿음을 세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넘치게 축복하셔서 믿음을 세우기도 하시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실패와 억울한 고난을 통해 믿음을 세우기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따라 이삭이 태어나는 역사를 통해 믿음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두 방법 중 한 가지만 쓰지 않으십니다. 승리만 계속되면 믿음은 잠깐 자라는 듯하다가 금방 무너지고 추락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목동 시절의 승리를 지나 사울의 추적이라는 더 강한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과정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연약해진 믿음이 드러난 도망의 길

사울을 피해 도망하는 것 자체는 불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하고, 골리앗의 칼을 무기로 받아 들었습니다. 이어서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찾아갔다가 신하들이 그를 알아보자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후 아둘람 동굴에 머물렀을 때 그를 따르는 사람은 사울 아래서 억울하게 상처 입은 400여 명에 이르렀고, 다윗은 모압으로 망명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선지자 갓이 유대 광야로 돌아가라고 권하자 다윗은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다윗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부르심은 내 계산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1-4절)

그일라가 블레셋의 약탈을 당하자 다윗은 그들을 구원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신하들은 자기들도 도망 다니는 처지라며 반대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다시 묻고 기도를 회복했고, 하나님은 그일라로 내려가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부르심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내가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대가가 따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부르심입니다. 블레셋으로부터 백성을 건져야 할 사람은 왕권과 군대를 가진 사울이었지만,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울의 입에만 남은 하나님의 이름 (7-8절)

다윗이 그일라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사울은 하나님이 다윗을 내 손에 넘기셨다고 말했습니다. 성문과 빗장이 있는 성에 스스로 들어갔으니 이제 그는 독 안에 든 쥐라고 했습니다. 입술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지만 그의 삶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백성을 지키는 왕의 책임을 저버리고 오직 다윗을 잡는 일에만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이름뿐인 하나님을 말하는 사울의 모습은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 있지만,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도망의 광야에서 배운 세 가지 (13-14절)

다윗은 600명 정도의 부하와 함께 그일라를 떠나 유대 광야를 옮겨 다녔습니다.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이 도망 생활을 통해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사울의 죄를 보기 전에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보았습니다. 그 죄를 드러내는 시편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둘째, 요나단과 미갈, 사무엘, 아히멜렉 그 누구도 다윗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대는 관계를 끊으시고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들을 통해서만 세우셨습니다. 셋째, 그래서 다윗은 고난을 잘된 일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19편 67절과 71절이 그 고백입니다.

Mise en pratique

  • 우리 안에 있는 제2의 사울을 찾아 회개합시다.
  • 사람이나 세상에 기대던 마음을 끊고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 지금의 실패와 억울한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받아들이며 기도를 회복합시다.
  • 부르심을 내 계산이 아니라 순종의 자리로 받아들이고 따라갑시다.

Ce résumé a été généré automatiquement à partir des sous-titres et peut différer de la prédication.

← Retour à 양재 3부 예배